“죽지 말고 탈출하라” – 북한군 출신 탈북자, 바르샤바 대사관 앞에서 외치다
- davidgooo8
-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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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6월 5일
【바르샤바, 5월 20일】
차가운 봄바람이 불던 오후 1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적막하던 북한 대사관 앞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Never die for a country or organization that will never love you back!”
“죽지 말고, 살아서 탈출하라!”
군복 대신 평범한 옷차림의 남성. 그의 이름은 엄영남, 나이 45세. 과거 북한군 장교였던 그는 이날 ‘전우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Comrades-in-Arms)’를 영어로 낭독하며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견된 북한군 포로들을 향해 절박한 외침을 던졌다. 그의 손에는 ‘STOP KILLING MY FELLOW SOLDIERS(나의 동료 군인들을 죽이지 말라)’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연설이 끝나자, 대사관 창문이 벌컥 열리며 북한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한동안 엄씨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엄씨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그리고 굳건히 서서 그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엄영남은 2001년 입대 후 9년간 복무한 북한군 출신이다. 그는 2010년, 전역 3개월 만에 탈북을 감행했다.
지난해 그는 영어로 된 회고록 『Strongest Soldier of North Korea(최강 북한군)』을 출간하며 세계에 북한 군대의 실상을 고발했다. 그중 특히 2008년 평양 순안공항 인근 ‘입체교’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은 충격을 안겼다. 김정일의 명령으로 최소한의 폭약만 사용한 철거작업 중, 20여 명의 병사가 자재에 깔려 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군인이 망치로 다리를 부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조국의 사랑이었을까요?”
엄씨는 이번 바르샤바 국제 도서전(5월 15~18일)에 ‘프리덤 스피커스 인터내셔널(FSI)’과 함께 참가해, 또 다른 탈북민 작가들과 북한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다. 대사관 앞 연설을 결심하기까지 그는 긴 고민에 시달렸다. 북한에 남은 이복누나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선에서 매일 죽음과 싸우는 전우들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습니다.”
북한 군인의 선서문에는 “적의 포로가 된다면 자결하라”는 문장이 있다. 생존한 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엄씨는 외쳤다.
“그들은 더 이상 여러분의 생명을 돌보지 않습니다. 세뇌에서 벗어나십시오. 이 세상은 북한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넓고 자유롭습니다. 죽지 말고, 자유를 향해 탈출하십시오.”
이날, 작은 외침이 바르샤바의 외교가를 흔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목소리는 전선 어딘가에 있는 한 북한 병사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전우여, 살아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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